[25.07.22] 이영철 교수 칼럼

등록 : 2025-07-30

최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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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 첫 독자는 아내다. 초고(草稿)를 본 아내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다. 게재불가. 수정. 그리고 무수정 통과! 수정은 전면수정과 부분수정, 두 가지가 있다. ‘감정에 치우쳐 있다, 논리의 비약이 심하다, 사실이 아닌 추측에 근거했다’고 판단되면 게재불가다. 특정 정치인을 비난하는 글에서 대부분의 게재불가 판정이 나온다. ‘글에 화가 넘치는 군’, ‘그건 당신의 심증이지’,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해’ 등 아내는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한다. 게재불가 판정이 내려지면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한다.

전면수정은 글이 ‘맹탕’인 경우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거지’, ‘일기장에 쓸 내용이지’, ‘귀한 지면을 낭비해도 되는가’ 등등의 이유가 따라온다. 한마디로 ‘독자의 수준을 무시하고 있다’로 요약할 수 있다. 전면수정 판정이 내려지면 맹탕을 ‘맵고, 짜고, 달달하게’ 만들어야 한다. 고춧가루, 소금, 설탕을 추가한다. 그래도 안되면, 아깝지만 버리는 수밖에 없다.

부분수정은 특정 정당, 정책을 비판할 때 많이 발생한다. 전체 방향은 동의하지만 일부분의 문제가 있는 경우다. ‘약해, 더 쎄게 가야해’, ‘용기가 없군, 자기 검열에 빠졌네’ 등의 야유를 받는다. 언론인은 기개(氣槪)가 있어야 하며, 칼럼니스트도 마찬가지라고 아내는 강조한다. 사실 아내의 생각과 다르면 게재불가고, 일치하지만 마음에 썩 들지 않으면 부분수정이다.

‘잘썼어!’는 무수정통과다. 간혹 있다. 무수정통과면 원고마감의 고민에서 해방이다. 무수정통과가 되려면 무엇보다 잘 아는 분야를 선택하고 내 경험을 솔직하게 표현해야 한다. 그에 더해 새로운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아내가 평소에 잘 아는 분야라고 생각했지만 미처 몰랐던 새로운 지식을 제공해야 한다. 사실 미디어 콘텐츠의 성공 요인 중의 하나가 정보욕구 충족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싶어한다. 교양욕구다. 달리 말하면 지적 허영을 만족시켜야 콘텐츠는 성공한다.

신기한 것은 아내의 평가와 신문에 게재된 칼럼을 읽은 지인들의 반응이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다. 게재불가야 공개되지 않았으니 다른 사람의 평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무수정통과를 받은 원고는 부분수정에 비해 좋다는 반응이 훨씬 많다. 공감도가 더 높다. 그러니 아내의 말을 존중할 수밖에. 아내는 제목 선정에도 관여한다. 독자가 있어야 글 쓴 의미가 있다. 아무도 읽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지면낭비다. 정보의 홍수시대에 제목이 진부하면 아예 읽지 않는다. 무엇보다 제목은 ‘섹시’해야 한다. 독자는 제목부터 본다. 독자의 관심을 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이 아내의 지론이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므로 아내는 이 칼럼의 첫 독자이면서 동시에 첫 편집자가 된다.

민주화와 대중교육의 보급으로 누구나 글을 읽고 쓰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나 글을 발표할 수는 없었다. 인터넷은 지면의 제한을 허물어버렸다. 스마트폰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빠르고 더 편하게 미디어에 접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 있는 신문의 지면은 여전히 소수에게만 허용된다. 물론 종이신문의 콘텐츠도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고 댓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하지만 기사와 칼럼은 아무나 쓸 수 없다. 신문의 공적 책임이 강조되는 이유다. 기자, 편집자는 물론이고 외부 기고가들도 항상 고민할 수밖에 없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 어떻게 써야 하는가?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섹션 편집자 출신인 트리시 홀은 ‘뉴욕타임스 편집장의 글을 잘 쓰는 법’에서 신문사 에디터가 원하는 외부기고는 다음 세 가지 중에 하나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을 놀라게 할 무언가가 있을 것, 오래된 주제를 새롭게 바라볼 것, 독자에게 읽는 즐거움을 주고 깊은 인상을 남길 만한 글쓰기 실력을 갖출 것’이 그것이다.

신문에 글이 게재되는 것은 영광이다. 동시에 두려운 일이다. 원고를 쓰면서 항상 자문(自問)한다. 내가 쓰는 글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첫 독자인 아내는 어떻게 반응할까. 이 칼럼은? 적어도 게재불가는 아니었다.

 

출처: 우리대학 포털사이트 / 경인일보

안녕하십니까, 젊은 글 바른 소리 협성대 신문사 편집국장 최수현입니다. 제보와 문의, 독자투고를 통해 독자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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