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5일 인권선언의 날, 한국 사회의 기억 구조를 묻는다
▲ 출처: 픽사베이
1950년 6월 25일, 1919년 3월 1일, 1945년 8월 15일. 한국 현대사의 전환점으로 기록된 이 날짜들은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어 있으며, 교육과 기념을 통해 반복적으로 회고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사회적으로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공식 기념일로 지정되지 않거나 시민사회 차원에서만 조용히 기려지는 날들이 존재한다. 7월 5일 ‘인권선언의 날’이 대표적 사례다.
1789년 7월 5일, 프랑스 국민의회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초안을 심의하고 채택 절차에 들어갔다. 이는 절대왕정과 신분제에 저항하는 시민 혁명의 결실이자, 근대 인권 사상의 토대가 되었다. 해당 선언은 훗날 1948년 「세계 인권선언」에 영향을 주었으며, 이후 국제 인권법과 다수의 민주 헌정 체제 형성에 큰 자취를 남겼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인권 관련 공식 기념일은 ‘세계 인권의 날(12월 10일)’ 정도로 제한되어 있으며, 이조차도 대중적 인식이나 교육, 정책 차원에서의 집중 조명은 드문 편이다. 1973년에서 2003년까지 법무부가 주관하여 진행된 정부 행사가 행정력, 비용 대비 실효성이 낮다는 이유로 민간 협회인 국가인권위원회로 이관했다. 심지어 공휴일로 지정되지도 않았다. 한국의 법정 공휴일 정책은 경제, 노동시간, 문화적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데 인권선언일은 이에 해당하는 국가적 인식이 크게 부족했던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국경일 및 정부기념일 현황」(2024)에 따르면 현재 지정된 정부 기념일은 600개를 상회하지만, 그중 ‘인권’과 관련된 기념일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기념일은 단순한 날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선택한 역사 해석의 결과이며,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배제할지를 결정하는 정치적 장치다. ‘기념일’이라는 제도는 특정 사건에 공적 의미를 부여하고 사회 구성원에게 ‘기억의 통일’을 요구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따라서 기념일의 지정은 역사적 사실의 중립적 표기가 아니라, 현재 권력과 사회 담론의 산물이다.
‘7월 5일 인권선언의 날’이 공식적으로 지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가 인권의 역사적 기원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정치사, 군사사 중심의 기념일이 다수를 차지하고, 인권, 노동, 소수자 인식과 같은 사회사적 의미는 제도화되지 않은 채 주변화되고 있다.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2023년 7월부터 2024년 7월까지 ‘7월 5일’과 ‘인권’이 함께 검색된 횟수는 전체 기념일 중 하위 10%에 해당했다. 이는 인권의 역사적 상징성에 비해 대중적 관심이 현저히 낮다는 점을 방증한다.
인권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투쟁과 기억의 과정을 통해 유지된다. 한국 사회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일정 부분 인권 담론을 제도화했지만, 여전히 ‘기억의 우선순위’에서는 주변에 머물러 있다. 이는 단지 특정 날짜 하나의 문제를 넘어, 역사 교육, 정책 기획, 시민 인식 구조 전반에 대한 재고를 요구한다.
기억은 선택이며 그 선택은 지금의 사회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말해준다.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현대 국가를 지향한다면, ‘인권선언의 날’과 같은 국제적 역사 자산을 단지 “기억되지 않는 날”로 방치하는 것은 역사적 책임의 회피에 가깝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 추구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헌법적 선언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사회가 인권의 역사적 뿌리를 기억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되새겨야 한다. 7월 5일 인권선언의 날을 통해 우리의 역사적 정체성을 점검해야 한다.
오지우 기자
2025-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