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말하다_『풍경의 뉘앙스』 김병호 지음 | 문학수첩 | 360쪽, 이 책은 등단 이후 병행해 왔던 시 창작방법론과 비평문 등을 한데 모은 것이다. 200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면서 시인으로 문단에 첫걸음을 내디디면서, 시 이외에는 한눈을 팔지 않겠다는 작심을 하기도 했으나, 대학에서 시를 가르치는 처지라 창작 외에도 시평과 계간평, 작품론 등의 문학적 발언들을 본의 아니게 해왔다.
시를 가르치는 입장이기에 개인의 시적 취향은 밀어두고, 새로운 시들이 만들어 내는 흐름을 예민하게 감각하면서 학생과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우리 시단의 지도를 그려보려는 마음이 컸다. 시를 쓰는 일보다 시를 해명하고 분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도 새삼 깨닫기도 하였다. 이런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등단 20여 년이 지나서야 겨우 내놓는 첫 비평집이다.
책 속의 원고 한 꼭지 한 꼭지를 집필하기 위해, 남의 시에 밑줄을 그어 읽으며, 우리 시대 시의 공시적 지평을 가늠하고, 우리 문학의 안과 밖을 살피는 지난한 시간을 보냈다. 시인의 자리에서 벗어나 공부하는 마음으로 깊게 오래 시를 읽으며, 반성적 거리를 둔 차가운 시선의 비평가를 흉내 내며,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나름 노력해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 편의 시가 지니고 있는 뉘앙스를 감별하며, 그것들이 지닌 층위를 더듬으면서 깨달은 바를 함께 나누려 썼던 글들이다.
이 책이 여타의 문학비평집과 다른 지점은 시 창작법에 대한 몇 편의 글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점이다. 힘에 부치는 일이었지만,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시를 읽고, 직접 창작하면서 맞닥뜨렸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시적 발상을 위한 발명과 발견의 기술이라든지, 이미지를 포착하고 형상화하는 방법론에 관한 내용은 실제 창작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고유한 내용들이다.
또한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의 작품들을 통해 그들의 시적 상상력과 원형구조를 살펴본 1부의 글도 읽어볼 만하다. 이 글은 상상력의 자율성 혹은 자발성, 그 적극적 능동성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했던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의 작품을 주목하고 있다. ‘초월적 실재에 대한 의식’, ‘이타성’, ‘통일성’, ‘영혼과 내세’, ‘탈주’ 등 우리 시문학의 다원적이고 풍요로운 상상력의 구조를 살피고,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정체성을 확인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앞으로 전개될 시세계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좋은 준거로 기대되기도 한다.
필자는 서정시에 관한 관심과 애정이 큰 편이다. 텍스트로 다룬 작품들이 대개 서정시의 영역 안에 놓인 것들인데, 전통의 서정시가 자연이나 사물, 현상이 주는 익숙한 감흥을 수동적으로 옮겨내는 데 급급했다면, 오늘의 서정시는 능동적으로 세계나 존재의 비밀을 찾아, 대상을 향해 스스로를 열어놓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삶과 문학에 대한 치열한 실존적 성찰을 깊이 있게 이끌 때 진정한 서정시의 면모도 더욱 빛나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학비평집 『풍경의 뉘앙스』에서 필자는 자연과 이성의 절대적 믿음이 깨져버린 산업화 사회에서, 혹은 더 이상 완전한 치유가 불가능한 현대인의 의식 속에서, 자연 풍경을 새로운 어법과 정서로 가져오는 일이 시인을 구도자적 탐구로 인도하는 게 아닌지 궁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창작자이면서 비평작업을 병행하는 그 경계에 서 있기 때문에 가능한 진단이다.
서정시의 기본 정서인 그리움과 회한, 고독과 쓸쓸함 등 인간적 번뇌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삶의 진실에 천착하는 시인의 내면을 풍경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노력은 오롯이 시인만의 몫임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누군가에게 일말의 공감과 위안을 느끼게 하진 않을까 하는 필자의 기대가 이 책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시인이 자연 풍경을 단순히 수사적 기교로 위장하며 시적 진실을 방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표정과 뉘앙스를 읽어내고, 그것들을 존재의 내면으로 치열하게 펼쳐낼 때 서정적 울림이 더욱 강해진다고 말한다.
한 편의 시를 읽고, 한 권의 시집을 읽으며 촘촘하게 써 내려간 이 책은 창작과 비평을 병행하는 자로서 해명할 수 없는 어떤 본래의 삶에 대한 예리한 감각이 감춰져 있다고 고백할 수 있다.
출처 : 교수신문 / 우리대학 포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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