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픽사베이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침했다. 서울이 불과 3일 만에 함락됐고, 전쟁이 순식간에 전국으로 번졌다. 전쟁은 3년 1개월 동안 이어져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어서야 총성이 멈췄다. 그러나 이는 ‘끝’이 아니다. 정전협정이기 때문에 전쟁은 ‘잠시 멈춘 상태’로 남아 있다. 남북은 세계 유일 분단국가이며, 여전히 갈등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전쟁은 과거 아니라, 현재이다.
영화 <고지전>을 본 적이 있는가. 영화에서는 수도 없이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싸우고 또 싸우며, 수많은 군인이 죽는다. 실제로 전쟁 당시 사망 군인의 수는 정전 협약을 하는 중에 빠르게 늘었다. 전쟁 중 사망한 군인은 남한 13만 8천여명, 북한 40만명 이상, 유엔군 약 5만 명, 중국군 14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필자의 외조부, 조부는 두 분 다 전쟁에 참전한 군인 출신이다. 어린 시절 두 분께 ‘그 때로 돌아가서도 참전을 했을거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나라가 부른다면 달려가겠지만, 이렇게 살아있을 지는 모르겠다고 항상 말씀하셨다. 민간인 피해는 이보다 더 크고 아프다. 끝없는 피난과 그로 인한 이산가족, 전쟁고아, 그리고 학살까지. 소중한 생명이 너무 쉽게 무너졌다. 내전이라는 이름으로 대국간의 전쟁은 분단이라는 상처로 남았다.
그러나 오늘날 6.25 전쟁은 종종 ‘기념일’, ‘공휴일’로만 인식된다. 그날의 고통이 역사책 한 줄로, 혹은 무표정한 현충일 메시지로 남는다. 현재 세대에게 전쟁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추상적인 과거가 되어가고 있다. 필자는 이 것을 ‘세대 차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기억은 사회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담는 행위이다. 공동체는 무엇을 기억하고 잊는 것을 통해 구성한다. 따라서 정쟁의 기억은 단지 전투의 서사가 아닌, 민간인의 고통과 공동체의 회복 노력까지 함께 담아야 한다.
어린 시절 6월이 되면 외할아버지의 말씀이 부쩍 적어지셨던 기억이 있다. 전쟁에 관련한 방송이 나오면 눈을 떼지 못하시던 상황이 아직도 뇌리에 꽂혀있다. 전쟁은 군인만의 일이 아니었다. 전장의 최전선에는 민간인이 존재한다. 외할아버지는 잃어버린 형제를 찾아 이산가족 상봉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고 하셨다. 끝내 찾지 못했다며 울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시는 모습은 평생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기념사업은 ‘군사 중심’의 기억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이제라도 ‘전쟁을 겪은 사회 전체의 기억’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75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여전히 한반도라는 이름 아래서 갈라서있다. 핵무기, 사이버 안보, 외교 갈등 등 전쟁의 양상은 달라졌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전쟁으로 인해 생긴 참극이었다.
그렇기에 이 기억은 반드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물려 받아야한다 그리고 평화를 향한 다짐으로 이어져야 한다. 전쟁은 한 세대의 흉터가 아니다. 그것은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기억의 유산이다. 우리는 ‘기념’을 넘어서 ‘교훈’으로 나아가야 한다. 전쟁을 기억하는 것은 과거를 붙드는 일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다. 오늘날 우리는 마주한 모든 갈등의 순간마다 그 때의 비극을,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는지 새겨야 한다.
참되고 바른 언론인의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오지우기자(juuuu0307@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