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픽사베이
2025년 5월 31일, 서울지하철 5호선 열차에서 60대 남성이 휘발유를 뿌려 방화해 기관사와 승객 400여 명이 대피했다. 그 이유는 이혼 소송 결과에 불만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지하철 1개 객차의 일부 소실과 2개 객차에서 그을음이 발생해 3억 3천만 원 상당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기관사는 즉시 열차를 멈추고 승객과 함께 소화기로 진화하고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승객들은 터널을 따라 긴급 대피했다. 이처럼 기관사와 승객들의 침착한 대응과 화재 대응 시스템으로 사망자나 중상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또한,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좌석 등 전동차 내부 기기가 불연 소재로 교체돼 불길이 확산되지 않았다.
2003년 2월 18일, 중앙로역에서 고의적 방화가 발생했다.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시도였다. 하지만 방화범은 열차에 불이 붙자 이내 도주했다. 화재가 발생한 1079 열차의 기관사는 화재 발생 이후 초기 진화에 실패하자 중앙사령실에 통보하지 않은 채 대피했다. 이후 지하철 사령실의 오판으로 이어져 원래 역을 무정차 통과해야 했던 1080 열차가 중앙로역 반대편 선로에 정차했다. 중앙로역 역무원이 사고가 발생한 지 4분 후에 119에 신고했고 1080 열차 기관사가 열차 출입문을 개방했지만, 사령실의 지시로 마스콘 키를 뽑고 탈출하는 바람에 다시 문이 자동으로 닫히며 더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중앙로역은 이용객보다 규모가 협소했고 구조는 복잡했다. 또한, 지하철의 내부가 불량 내장재로 불이 옮겨붙는 속도가 빨라 화재의 피해가 커졌다. 비상시 문을 수동으로 열 줄 아는 사람이 없어 출입문이 닫힌 후에는 거의 탈출하지 못했다. 4호 객차는 당시 철도청 공무원이 타고 있어 비상 코크를 취급해 출입문을 수동 개방했고 5호 객차는 승객들이 수동으로 출입문을 여는 방법을 몰라 창문과 문을 부수고 탈출했다.
대구 지하철 참사로 인해 지하철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전동차의 내부 기기는 불량 내장재에서 불연 소재로 교체돼 불길의 확산을 방지하고 개방 레버의 위치나 지하철 문과 스크린도어의 수동 개방하는 방법의 홍보를 통해 승객들이 비상시에 스스로 탈출할 수 있도록 했다.
지하철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시 노약자 · 장애인석 옆에 있는 비상 버튼을 눌러 승무원과 연락하고 비치된 소화기를 이용하여 화재를 진화한다. 출입문이 자동으로 열리지 않으면 출입문 쪽 의자 아래 또는 벽면에 있는 조그만 뚜껑을 연 후 비상 코크를 잡아당기거나 빨간색 비상 핸들을 시계방향으로 90도 돌려서 수동으로 문을 열어야 한다. 아니면 비상용 망치를 이용하여 유리창을 깨고, 망치가 없으면 소화기를 이용할 수 있다. 스크린도어(PSD)가 열리지 않을 경우는 스크린도어에 설치된 빨간색 바를 밀고 나가면 된다. 코와 입을 수건, 티슈, 옷소매 등으로 막고 비상구로 신속히 대피한다. 정전 시에는 대피 유도 등을 따라 출구로 나가고, 유도등이 보이지 않을 때는 벽을 짚으면서 나가거나 시각장애인 안내용 보도블록을 따라 이동하면 된다. 지상으로 대피가 어려울 때는 전동차 진행 방향 터널로 대피해야 한다.
대구 지하철 참사는 세계적으로 역대 최악의 지하철 사고로 꼽히며 전 세계 지하철 사고 사망자 수 2위를 기록한 철도 사고였다. 한 번의 큰 희생이 발생한 후에야 대비할 수 있었다. 반복적인 교육과 대응을 통해 똑같은 대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고의적인 방화로 인해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는 안전하고 편리한 교통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길 바란다.
정직하고 열정적으로 소식을 전달하는 정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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