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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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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의사제는 현재 의료 문제를 해결할까?
    ▲ 출처: 픽사베이   현재 우리나라는 지역 간 의료 불평등은 해마다 심화되고 있다. 2025년 10월 31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2024년 지역별 의료이용 통계'에 따르면, 시군구별 의료 이용 격차가 최대 1.6배로 여전히 크고 지역 간 의료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도시에 비해 지방은 의료기관 접근성이 낮아 한 번 방문 시 여러 진료를 받는 경향이 있고, 만성질환 관리를 위한 정기 방문이 많다. 국가데이터처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이 주로 농어촌에 거주한다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의료기관까지의 거리가 1시간이 넘는다’라는 답변에는 도시 지역은 1%였지만, 농어촌은 24%대로 보였습니다. 지역의사제는 지역 간 의료인력 수급 불균형과 의료 격차 해소를 위한 것으로 12월 2일에 지역 의사 양성법이 국회 본회의에 통과했다. 이는 복무형과 계약형으로 나뉜다. 복무형 지역의사는 의대 정원의 일정 비율을 지역의사선발전형으로 뽑아 정부가 학비를 지원하고 졸업 후 특정 지역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근무하는 것이다. 의대 졸업을 못 했거나 졸업 후 3년 이내 의사 면허를 따지 못하는 경우, 의무 근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는 학비를 반환해야 한다. 이는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 논의를 거쳐 2028학년도 정원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계약형 지역의사는 기존 전문의 중에서 국가 지자체 의료기관과 계약을 맺고 특정 지역에서 5~10년 근무하는 제도다. 올해 7월 시범사업을 시작해 현재 81명이 참여해서 활동하는 중이다. 의사 단체는 지역의사제로 지역의료 위기의 본질을 해결하는 실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지역에서 근무하기를 꺼리는 만큼 정주 요건이나 인프라 구축 등이 선행돼야 한다며 ‘제2의 의료대란’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10월 30일, 조원씨앤아이의 ‘응급의료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8명은 지역에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하는 ‘지역의사제’ 도입을 찬성하는 것으로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의료인력의 균형 있는 배치를 통해 지역 간 의료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라며 찬성하는 비율은 77.0%로 나타났다. 지역의사제는 특정 지역에 의사 인력을 배치하여 지역 간 의료인력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지역 의료기관의 기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단기적으로 지역 필수의료 붕괴를 늦추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특히, 소아청소년과나 산부인과와 같은 힘들고 어려운 필수 진료를 보는 데는 필요하다. 하지만 지역의료의 위기는 병원 수 부족인 것 같다. 현재 의사 수도 부족하지만, 병원 수가 적어서 도서나 산간 지역은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농어촌에는 노인이 많이 산다. 하지만 ‘교통약자 이동 지원’ 차량을 부르고 기다리는 데 한 시간과 읍내 병원까지 이동하는 시간 한 시간으로 총 두 시간이 걸린 사례가 있다. 그렇기에 단순히 의무 근무 기간이 끝난 뒤 해당 지역에 계속 남아서 병원을 운영할 수 있는 의사 인재를 생성해야 한다. 이 외에도 병원 인프라, 보상 체계, 근무 여건, 지역사회 의료 수요 등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구조적 지원도 함께 마련하는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 의료 사각지대가 없는 대한민국 의료 체계가 되길 바란다.
    정희진 기자 2025-12-07
  • 11
    진짜 같은 가짜
    ▲ 출처: 픽사베이   언론은 신문, 방송, 통신, 인터넷 등의 매체를 통해 사실을 밝혀 알리거나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그러나 최근 사람들이 언론을 소비하는 방식이 온라인 위주로 바뀌면서 언론의 본질이 흔들리고 있다. 온라인 환경의 특성상 한 번의 클릭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 그렇기에 언론은 자극적이고 과장된 표현을 적은 낚시성 제목을 조회수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기사나 영상 제목만 보고 클릭해서 내용을 보면 단순한 일상이나 별 내용이 아닌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를 독자들이 많이 접하다 보면 언론에 대한 신뢰는 낮아지게 된다. 또한, 언론의 기본 가치는 사라지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짧은 시간 안에 정보를 얻기를 원한다. 특히, 자극적이고 재밌는 소재에만 관심을 보인다. 언론사는 조회수와 머무는 시간 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에 집중한다. 이는 정보의 정확성보다 자극적인 제목을 작성함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상황이 생겼다. 이런 현상이 반복적으로 계속돼 눈덩이 효과를 키우고 있다. ‘결혼한 지 14년 만에... 안타깝다’라는 제목은 꼭 결혼 당사자들이 이혼하거나 병에 걸린 것 같은 무거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내용은 배우자 몰래 술자리에 갔다는 별거 아닌 이야기였다. 또한, 확인되지 않은 거짓된 정보로 언론에 알려지는 경우도 있다. ‘연예인, 암 수술 2번 했다.’라는 기사가 있었는데 해당 연예인이 검진만 했을 뿐 결과도 안 나왔다고 해명한 사례도 있다. 알고리즘 역시 사람들이 편향을 갖는 데 일조한다. 알고리즘은 사람들이 보는 주제를 위주로 비슷한 콘텐츠들을 보여준다. 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거나 새로운 형태의 차별을 만들어낼 수 있다. 또한, 독자들에게 편향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도 미디어 리터리시를 길러야 한다. 요즘 AI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사람보다 AI에만 의존하는 사람들도 있다. AI의 기술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오류가 많다. 그렇기에 사람들도 정확한 정보를 읽어내는 연습을 해야 하며 관심사가 아니어도 찾아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하지만 언론은 알릴 권리가 있다. 자극적이지 않은 소재라도 중요한 사안일 경우 이를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낚시성 제목을 좋은 방향으로 작성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미 사람들의 관심이 많은 기사 제목 대신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도가 낮은 기사의 제목을 과장된 표현을 써서 사람들의 시선을 돌릴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언론은 중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독자는 언론의 여론에 따라 사회 이슈를 바라본다. 언론 매체는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는 사회적 분열을 야기하고 확증편향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같은 사건이라도 매체마다 해석해주는 방식이 다르다. 독자는 그대로 소비하지 말고, 다양한 언론을 찾아 읽으면서 자신만의 생각을 확립해야 한다. 언론사는 독자의 관심도 중요하지만, 왜곡된 정보가 쌓이지 않도록 지켜내는 일도 해야 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언론은 윤리와 정확성을 지켜야 한다. 진실한 언론만 가득한 세상이 오길 바란다. 
    정희진 기자 2025-11-07
  • 10
    편리함의 그림자, ‘사람 없는 사회’가 남긴 공허함
    ▲ 무인카페 커피머신   도심 곳곳에서 더 이상 점원을 찾기 어려워졌다. 무인 카페, 무인 편의점, 그리고 무인 세탁소까지. 이제 사람 없이도 하루 24시간 운영되는 시스템은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AI 기술과 자동화 시스템은 빠르고 효율적이다. 계산은 신속하고, 주문은 정확하며, 인건비 부담도 줄어든다. 겉보기엔 모두가 이득을 보는 구조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람 없는 사회’의 편리함 아래에 쌓여가는 불편과 피로감은 분명 존재한다. 최근 많이 설치되고 있는 무인 매장은 표면적으로는 깨끗하고 세련돼 보였지만, 섬세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 많다. 심지어 우리대학에 위치한 ‘카페룬’ 무인 매장도 커피 머신 옆에는 닦이지 않은 얼룩이 그대로 남아 있고, 바닥에는 떨어진 얼음과 휴지가 굳은 채로 방치돼 있다. 누구에게 말할 수도,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직원이 있는 매장에서라면 즉시 해결될 사소한 일들이, 무인 매장에서는 오랜 불편함으로 남는다. 더 큰 문제는 이 공간을 관리하는 ‘책임자’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기계가 사람을 대신한다는 명분 아래, 결국 청결과 관리의 공백이 생긴다. 무인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인건비 절감이다. 하지만 그 인건비 속에는 ‘사람의 역할’이 포함되어 있었다. 계산을 돕던 아르바이트생, 고객의 불편을 바로잡던 점원, 웃으며 인사를 건네던 직원. 이들은 단순히 노동자가 아니라, 공간의 온기를 유지하는 존재였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효율이 남았지만, 온기는 사라졌다. 특히 무인 카페의 경우, 일부 이용자들이 몇 시간씩 자리를 차지하거나 음식물을 치우지 않고 떠나는 사례가 빈번하다. ‘관리자 부재’가 만들어낸 무질서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AI와 자동화는 인간의 손을 돕는 도구로 쓰일 때 가치가 있지만, 인간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쓰일 때는 그 가치를 잃는다. 무인 시스템이 확산되면서 가장 먼저 불편을 겪는 사람들은 노인과 장애인들이다. 키오스크를 마주한 이들이 주문을 포기하고 돌아서는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다. “기계 앞에서 사람처럼 대우받지 못하는 느낌”이라는 말은 기술이 만든 또 다른 벽을 보여준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존엄을 가리는 순간, 그것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다. 물론 기술의 발전을 저해할 수는 없다. 문제는 ‘무분별한 사용’이다. 특히 인간의 손길이 직접 닿는 서비스 영역인 음식, 미용, 의료 등에서는 AI와 무인화의 도입이 신중해야 한다. 위생과 안전, 그리고 감정적인 교감이 필요한 분야에서까지 사람을 완전히 배제한다면, 우리는 결국 불편함을 더 큰 비용으로 되돌려받게 될 것이다. 섬세함이 필요한 자리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어야 한다. AI는 인간을 대신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존재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얼마나 빠르게 처리하느냐’만을 기술 발전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속도와 효율에 가려진 질문인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를 다시 꺼내야 한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편리함은 결국 비인간적인 사회를 만든다. 사람 없이도 돌아가는 세상이 아니라, 사람을 잃지 않고도 발전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기술과 공존해야 할 진짜 이유다.
    오지우 기자 2025-11-06
  • 9
    나눔이 만든 새로운 소비, 중고거래의 온도
    ▲ 각종 중고사이트   몇 해 전만 해도 ‘중고거래’는 물건을 저렴하게 구매하기 위한 선택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전혀 다르다. 경제적 불황과 물가 상승 속에서도, 중고거래 시장은 오히려 활기를 띠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새것’보다 ‘가치 있는 것’, ‘나와 누군가를 이어주는 것’을 소비한다. 앱을 켜면 내 주변 3km 안에서 활발히 이루어지는 거래 글들이 쏟아진다. “직접 가지러 오실 분께 무료로 드려요”, “아이가 쓰던 책이에요, 좋은 분께 가면 좋겠어요” 같은 문장에는 단순한 상거래 이상의 따뜻함이 담겨 있다. 누군가에겐 버려질 물건이 다른 누군가의 일상에 스며들고, 물건 하나를 매개로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거래’는 점차 ‘관계’로, ‘소비’는 ‘공유’로 바뀌어 간다. 환경부는 최근 보도자료에서 “재사용·재활용을 통한 탄소 절감 효과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단 한 번의 중고거래가 플라스틱, 금속, 종이의 폐기를 줄이고 탄소 배출을 감소시키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중고거래는 생산과 소비, 폐기의 일방적 구조에서 벗어나 물건의 생명을 연장하는 ‘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특히 당근마켓, 번개장터, 중고나라 등 플랫폼은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을 넘어 지역 기반의 소통 창구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 동네’ 탭에서는 이웃 간의 소소한 일상이 오가고, “함께 조깅할 사람 구해요”, “아르바이트 구합니다”, “강아지 산책 친구 찾아요” 같은 글들이 올라온다. 거래를 넘어 정보 공유와 관계 형성, 구인·모임 참여 등 다양한 형태의 지역 교류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이러한 기능은 지역 공동체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낯선 사람과의 작은 거래에서 시작된 대화가, 나중에는 커뮤니티의 신뢰와 유대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MZ세대 소비문화 트렌드 보고서」는 이 세대의 특징을 이렇게 요약한다. “싸다고 사지 않는다. 의미가 있어야 산다.” 이 문장은 오늘날 MZ세대의 중고거래 문화를 가장 잘 설명한다. 그들에게 중고거래는 단순한 절약의 수단이 아니다. 물건의 ‘이야기’와 ‘역사’를 공유하는 감성적 행위이자, ‘지속 가능한 소비’를 향한 윤리적 선택이다. 특히 당근마켓의 ‘당근온도’ 기능은 신뢰의 지표로 자리 잡았다. 나의 거래 태도, 약속을 지키는 정도가 숫자로 표현된다. 36.5도에서 시작하는 이 ‘온도’는, 거래를 거듭하며 쌓이는 신뢰의 체온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스템은 ‘익명성’에 가려진 온라인 거래의 차가움을 덜어내고, 현실적인 ‘사회적 신뢰 구조’를 복원시킨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문화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거래 사기나 약속 파기, 부당한 가격 책정 등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중고거래 관련 사기 신고 건수는 2024년 한 해에만 수만 건에 이른다. 거래의 자유가 보장된 만큼, 윤리적 책임도 함께 요구되는 이유다. 가장 큰 문제는 ‘나눔의 정신’이 상업적 이익으로 변질되는 경우다. 일부 이용자들은 시장 가격보다 높게 중고품을 되파는 ‘리셀 문화’를 중고거래로 포장하기도 한다. 플랫폼은 거래 검증 절차를 강화하고, 이용자는 ‘신뢰를 파는 시장의 주체’임을 자각해야 한다. 중고거래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다시 쓰기’와 ‘다시 연결하기’의 문화다. 낡은 물건에 새 주인을 찾아주는 일은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이야기의 계승’이며, 인간적 온도의 회복이다. 버려진 가방 하나가 학생의 손에 들리고, 오래된 소설책이 누군가의 잠자리 독서로 이어지는 순간, 우리는 ‘나눔의 가치를 소비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세대와 지역을 넘어선 연결, 환경적 책임과 윤리적 소비의 결합, 그리고 사람 사이의 신뢰 회복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나눔이 일상이 되고, 소비가 관계가 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더 따뜻한 인간으로 성장할 것이다.
    오지우 기자 2025-10-11
  • 8
    주 4.5일제, 워라밸의 시작?
    ▲ 출처: 픽사베이   주 4.5일제는 한 주의 근로일을 4.5일로 줄여 근무하는 제도로, 주 4일 근무의 장점을 일부 도입하면서도 기존 주 5일 근무제와의 균형을 맞추려는 중간 단계의 근무 형태이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 유연근무제 등 근무 환경에 대한 변화가 가속화되면서 다양한 근무 형태가 주목받고 있으면서 논의가 시작됐다. 운영 방식은 매주 주 1회 반일근무, 주 35시간제, 격주 주 4일제가 있다. 매주 1회 반일근무는 주 5일 근무 중 4일은 정상적으로 근무를 하고 1일만 오전 또는 오후 중 절반만 근무하는 방식이다. 주 35시간제는 원래 법정 근로시간인 40시간에서 35시간으로 단축하는 것이며 격주 주 4일제는 2주에 한 번씩 하루를 쉬는 방식이다. 최근 경기도에서는 2027년까지 3년간 주 4.5일제 시범 운영을 시행하고 있다. 도내 상시노동자 30명 이상 200명 미만인 민간 사업장 50곳을 선정해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 제도 도입을 지원한다. 기업들도 주 4일제 혹은 주 4.5일제 도입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포스코는 ‘격주 주 4일제’를 시행하고 있다. 기업교육 전문기업 ‘휴넷’은 2019년부터 주 4.5일제를 도입하였고, 내부 직원들의 긍정적인 반응으로 2022년에는 이를 확대해 매주 금요일마다 쉬는 주 4일제를 도입했다. 오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푼라디오’도 2022년부터 매주 월요일은 4시간만 근무하는 주 4.5일제를 시행하고 있다. 입소스 주식회사(IPSOS)에 따르면,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금요일 오후를 법정 휴무일로 편입하거나 주 1회를 반일만 근무하는 등 주당 근로일수를 4.5일로 줄이는 제도 도입에 관한 물음에 반대 의견이 54%의 응답률을 보였지만 찬성은 42%에 그쳤다. 연령층 중 40대에서만 찬성이 56%로 반대를 앞질렀으며 나머지 연령층에선 모두 50% 이상의 반대 의견이 집계됐다. 직업군별로는 사무직에서 찬성이 58%, 반대가 40%로 조사된 것과 달리 현장에서 일하는 직군에선 찬성 47%, 반대 46%로 비슷한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영업의 경우 반대 의견이 68%로 찬성(30%)을 두 배 이상 웃돈 것으로 조사됐다. 해외에서는 이미 많은 나라가 시행하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2015년부터 주 4일제를 했으며 생산성은 유지되거나 증가했다. 반면 일본도 주 4일제나 유연근무제를 했지만, 생산성을 유지한 곳도 있지만 일 몰림이나 팀 협업의 어려움이 있었으며 중소기업의 경우 인력 부담이 커졌다는 사례도 있다. 영국 역시 2022년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주 4일제를 시법 도입했지만, 고객 대응의 속도 저하 및 업무량 몰림으로 기존 근무제로 돌아간 사례도 있다. 주 4.5일제는 단순히 ‘근무 시간 단축’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회사의 유형에 따라 적용하는 것이다. 근무 시간을 축소하고 실제 업무량은 그대로면 일을 몰아서 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오히려 업무 스트레스 증가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주 4.5일제가 ‘휴일의 확대’로만 끝이 날 것이 아니라 일의 방식과 본질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의 시작으로 출발해야 한다. 또한, 효율성과 공정의 측면에서도 검토해야 한다. 앞으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고 다양한 산업 구조를 고려하며 진정한 워라밸이 되길 바란다.
    정희진 기자 2025-10-11
  • 7
    나이를 무기로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
    ▲ 출처: 픽사베이   2024년 11월, 인천 아파트 주차장에서 중학생이 동급생의 뺨을 7차례 때리고 흉기로 위협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2025년 5월 소셜미디어에 영상이 업로드되며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하지만 범행 당시 가해자의 나이가 13살로 형사미성년자에 속해 소년부 송치로 마무리됐다. 사법 정보공개 포털에 따르면 촉법소년 수는 2019년 1만 22명에서 지난해 2만 1,478명으로 114% 급증했다. 대부분의 소년범죄는 촉법소년이 저질렀다. 교육부의 '2024학년도 교육활동 침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4년 지역 교권보호위원회 개최 건수는 4,234건이다. 이는 교육의 붕괴, 교사의 체벌 금지 등으로 인해 청소년의 범죄가 매년 늘어가고 있다. 촉법소년은 형벌을 받을 범법 행위를 저지른 만 10세 이상∼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이다. 형법 제9조는 ‘14세가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형사책임능력이 없기에 형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더라도 형사처벌을 하지 않고, 가정법원이 소년원으로 보내거나 보호관찰을 받게 하는 등 ‘보호처분’을 한다. 이런 점을 악용해 촉법소년에 해당하는 청소년들이 더 쉽게 범죄를 행한다. 국가마다 형사미성년자의 기준이 다르다. 일본, 독일, 영국의 경우 만 14세 미만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교육을 목적으로 하지만 반복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때 강한 보호처분을 하고 영국은 가장 낮은 기준으로 실형 선고까지 가능하다. 미국은 주마다 상이하지만, 일부 주는 만 10세까지를 형사미성년자로 하고 있으며 중범죄 시 성인과 동일한 형사처벌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는 청소년 보호, 사회 안전과 피해자 보호까지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저 청소년 보호에만 치중하고 피해자 보호는 미비하다. 촉법소년에 관한 범죄가 많아지면서 나이를 의견이 거듭 제기됐으나 청소년의 재사회화 가능성 보장을 이유로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는 현실이다. 청소년이 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장치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확실한 교육과 훈육, 법 제정을 통해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다. 나이는 어리더라도 배움을 통해 충분히 옳고 그름에 관해 인지할 수 있다. 이는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외면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방임도 무언의 동조이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해 주며 피해자가 우선인 국가가 되어야 한다. 범죄가 당연하지 않도록 제대로 된 ‘교화의 기회’로서 제도가 시행되길 바란다.
    정희진 기자 2025-09-12
  • 6
    K-컬처, 한국적인 것의 세계화가 답이다
    ▲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포스터   세계는 지금 K-컬처에 열광하고 있다. 더 이상 ‘한류’는 특정 세대를 겨냥한 유행이나 일시적인 소비 흐름이 아니다. 드라마와 음악을 넘어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 전방위로 확산되며, 한국의 전통과 현대적 감각이 조화를 이루는 문화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최근 화제를 모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는 단순한 흥행 성공을 넘어, 한국적 요소가 세계적으로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자리 잡았다. 케데헌은 미국 제작사와의 협업 작품이지만, 이야기 속에는 호랑이, 까치, 무속적 이미지 등 한국의 정서와 상징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단순히 외형만 차용한 것이 아니라, 전통적 모티프가 작품의 중심축을 이루면서 세계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상징이 글로벌 스토리텔링과 결합하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 결과 케데헌은 넷플릭스 역사상 최다 시청 애니메이션 기록을 세우며 글로벌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OST 역시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하며 음악 부문에서도 성과를 입증했다. 이러한 성과는 단순히 ‘운’이나 ‘시대적 흐름’으로 설명할 수 없다. 세계가 이미 한국 문화를 인정하고, 모방하려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과거에는 서구 문화가 세계 대중문화를 주도했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이를 수용하거나 변용하는 위치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제 판도가 바뀌었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은 콘텐츠의 ‘창조자’로 자리 잡았다. 특히 케데헌처럼 전통적 요소가 포함된 작품이 성공했다는 사실은 세계가 한국 고유의 정체성을 ‘차별적 강점’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제 우리 내부다. 국내 콘텐츠 산업은 여전히 자본 논리에 따라 획일화된 작품을 양산하는 데 치우쳐 있다. 흥행 공식을 반복하는 드라마, 아이돌 음악 포맷의 과잉 재생산은 단기적 수익에는 유리할지 몰라도 장기적인 생명력을 보장하지 못한다. 반면, 전통과 정체성을 새롭게 해석한 창작물은 문화적 신선함을 제공하며, 세계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 수 있다. 케데헌의 성공은 한국적 상징과 정체성을 살린 작품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한류의 동력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더욱이 K-컬처의 확산은 단순히 문화 산업의 영역을 넘어 국가 이미지를 형성하는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다. 문화 외교 차원에서도, 한국적 정체성이 살아 있는 콘텐츠는 우리 사회의 역사와 가치를 세계에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다. 이는 경제적 효과 못지않게 중요한 정치·외교적 파급력을 지닌다. 일본이 ‘재패니메이션’을 통해 문화 강국으로 자리 잡았듯, 한국도 케이팝·드라마·게임을 넘어 한국적 정체성이 녹아든 다양한 창작물을 통해 ‘문화강국’의 위상을 공고히 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한국적인 것’을 어떻게 세계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더 큰 상상력이다. 전통이 단순히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으로 재해석될 때, 콘텐츠는 세계 어디서나 통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한복이 단순한 전통의상이 아니라 글로벌 패션 브랜드와 협업해 새로운 스타일로 변주될 때, 혹은 판소리와 K-팝이 결합해 독창적 음악 장르로 진화할 때, 우리는 한국적 정체성을 세계적 자산으로 만들 수 있다. 케데헌은 이를 입증한 최초의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앞으로 한국 창작자들이 전통과 현대, 지역성과 보편성을 아우르는 도전을 거듭한다면, K-컬처는 인류 문화사 속에 뿌리내리는 흐름이 될 것이다. 결국 K-컬처의 미래는 정체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키워가는 방향에 달려 있다. 세계가 이미 열광하는 우리의 문화 자산을 단순한 소비재로 소모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를 위한 상상력의 원천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제는 한국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창작 실험을 지원하고 장려해야 할 시기이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한국적인 것의 세계화’를 향한 실천이다. 그것이야말로 K-컬처가 단순한 산업을 넘어 인류 보편적 문화 자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길이다. 
    오지우 기자 2025-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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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혈,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 출처: 픽사베이   헌혈은 수혈이 필요한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하지만 전혈은 장기간 보관이 불가능하고 긴급 수술 시 필수적이기에 지속성이 중요하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독자적이나 적십자사와 연계한 혈액원을 갖추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수혈용 혈액인 전혈과 혈소판은 자급하지만, 의약품 제조용 혈액인 혈장의 경우 일부를 수입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 혈액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대한적십자사의 ‘2024년 혈액 사업 통계연보’를 보면, 헌혈에 한 차례 이상 참여한 인원이 126만 4,525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누리집에 통계가 올라온 2005년(227만 4,336명) 이후 역대 최저 수준이다. 10년 전인 2014년에 비해 25.4%가 줄었으며 현재 헌혈이 가능한 나이는 16~69살인데, 이 중 3.27%만 2024년도에 헌혈에 참여했으며 1년에 2회 이상 헌혈한 사람이 늘면서 전체 헌혈 건수가 유지되는 모습이 보인다. 게다가 저출산 고령화의 사회적 문제로 미니 돼지를 통해 혈액 부족 사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헌혈하면 자연재해나 긴급 수술과 같은 응급 상황 시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으며 수혈이 필요한 환자를 도울 수 있다. 또한, 정기적인 헌혈은 새로운 적혈구를 생성하도록 유도해 심혈관 건강을 유지하며 체내 철분 수치를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시간적 여유가 없거나, 헌혈 후 어지러움, 피로, 기절 등 부작용 걱정으로 인해 헌혈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많은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헌혈캠페인을 시행으로 헌혈 차량이 직접 학교와 군부대 등을 방문해 헌혈 수급을 한다. 특히, 시민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사은품을 증정함으로써 사람들의 자발적인 헌혈 동참을 격려한다. 그러나 헌혈을 독려하기 위한 사은품 제공은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순수하게 기부를 목적으로 온 사람들은 사은품으로 인해 자신의 자발적인 선의가 대가성 행동이라는 것에 회의감과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또한, 오히려 사은품으로 인해 헌혈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해 정기적인 수혈로는 이어지기 어렵다. 특히, 이런 비합리적인 인센티브 헌혈 문화로 인해 오히려 혈액과 수혈자의 안전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 단순히 영화 관람권이나 봉사 시간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치료나 약 복용 사실 등 여러 중요한 감추고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헌혈자에만 의존해서 확인 할 수밖에 없어 제대로 입증할 방법이 없는 사실도 문제이다. 그렇기에 사은품은 헌혈과 관련 없는 문화상품권, 영화관 표를 제외한, 기부 증서나 헌혈자 이름으로 기부된 기념품 증정 인증이 본래의 의미를 지키며 진정한 헌혈을 독려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기적인 수혈을 할 수 있도록 헌혈 횟수를 기록하는 방법을 통해 사람들의 헌혈을 독려할 수 있을 것이다. 나눔만을 통해 실현할 수 있는 헌혈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길 바란다.
    정희진 기자 2025-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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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왜 계속 확인하고 또 확인할까? 일상의 강박에 대하여
     ▲ 출처: 픽사베이   현관을 나서고 몇 걸음 못 가 다시 돌아간다. 가스레인지는 껐던가? 문은 제대로 잠갔나? 휴대전화로 문을 찍어두었음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잠시 후, 보내놓은 문자를 다시 확인하고, 맞춤법이나 말투가 이상하진 않았는지 살핀다. 전송 버튼을 누른 후에도 그 메시지를 몇 번이고 읽는다. 불과 몇 초 전의 행동을 계속해서 되돌아보는 이 반복은 피로감을 동반한다. 이처럼 사소하지만 반복되는 확인 행동은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우리는 그것을 종종 ‘성격’ 혹은 ‘습관’이라 말하며 웃어넘기지만, 실은 더 깊은 마음의 구조와 맞닿아 있다. 불안, 통제 욕구, 혹은 완벽에 대한 집착 같은 것들이다. 확인은 확신을 얻기 위한 행위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일상은 그 ‘확신’이 너무 자주, 너무 과도하게 요구되는 시대 속에 놓여 있다. 확인 강박은 디지털 영역에서도 끊임없이 작동한다. SNS에 글을 올리고 나면 ‘좋아요’ 숫자나 댓글 반응을 확인하고, 메시지를 보낸 뒤에는 상대가 ‘읽음’을 눌렀는지, 언제 답장이 올지 마음을 졸인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쓴 댓글이 이상하게 읽히지는 않을지 불안해하며, 글을 삭제하거나 편집하기도 한다. 이 모든 반복은, 실은 우리가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계속 확인하고 있다는 뜻이다.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더욱 작은 단서들에 집착하게 된다. ‘분명히 닫았던 창문’이 떠오르고, ‘이미 끝낸 일’이 다시 고개를 들며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행동은 그 자체로 병적이라기보다는, 불안에 반응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일 수 있다. 우리는 불안을 느끼고, 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스스로에게 증거를 요구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 증거가 언제나 부족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확인은 또 다른 확인을 낳는다. 강박적인 확인 행동은 일상의 리듬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중요한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고, 반복하는 자신에게 짜증을 느끼게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불편함을 견디며 “나는 왜 이럴까”라는 자책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지 ‘이상한 습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의 내면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발휘하는, 일종의 방어 기제일 수도 있다. 확신은 편안함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모든 것을 확실히 통제할 수는 없기에, 그 편안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확인은 잠시의 안도감을 주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또 다른 의심은 더 깊은 불안을 부른다. 결국 중요한 것은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은 마음의 상태다. 모든 것을 확실하게 정리하고, 이해하고, 통제하려는 욕망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불필요한 반복도 잦아든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실수도 하고, 빠뜨리기도 하며, 약간은 부족한 듯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불안은 완전히 없앨 수 없다. 다만 그 불안을 견디는 힘은 스스로 만들 수 있다. 모든 것을 다시 확인하는 대신, 때로는 ‘확인하지 않기’를 선택해 보는 것. 그 작은 실험이 마음의 여유를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권민선 기자 202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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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 니트족, '멈춘 청춘'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필요하다
    ▲ 출처: 픽사베이   거친 세상 속에서 상처를 받아 외톨이가 된 청년들. 사회는 ‘청년 니트족’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왜 사회로부터 질타를 받아야 되는 걸까. 오히려 보호해야 마땅한 쓰러진 청춘들에 대한 비난. 이들은 반복되는 좌절과 무기력 속에서 점점 사회와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대한민국의 전체 청년 중 약 5%(약 50만 명)가 니트족에 속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날이 늘어가는 수치는 우리 사회가 병들어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그들의 고통은 ‘취업’의 벽에서부터 시작됐다. 연이은 실패의 결과는 자기 탓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되는 불합격 소식이 그들의 어깨를 위축시켰다. 경력직 신입을 원하는 기업의 태도에 그들은 제도 밖에 떨어져 있는 외톨이가 된 셈이다. 청년을 위한 정책은 넘쳐나지만, 대부분은 ‘준비된 자’를 대상으로 한다. 오랜 공백이 있는 그들은 기준조차 해당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5~34세 청년의 ‘쉬었음’ 비중(구직 포기, 비경제활동)은 2024년 말 기준 약 16% 이상으로 급상승한 분석도 존재한다. 자발적으로 쉬는 경우는 28%, 비자발적(취업실패 등)은 72%에 달해, 대다수가 구조적 원인 때문이라고도 밝혔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사회 인식의 전환이다. 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못 하고 있다’라고 바꿔야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왜 멈춰선 채로 웅크리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청년 니트족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경쟁과 탈락이 일상이 된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누군가는 결국 탈락자로 남게 된다. 주저 앉은 그들을 우리의 제도와 시선이 만들어낸 그늘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을 사회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 병든 사회를 다시 고쳐야 한다. 낙인을 거두고, 공백을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사회만이 청년을 다시 안으로 불러들일 수 있다. 필자는 사회에서 누구에게나 한 번쯤 멈출 권리를 허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쉬어가는 시간이 무조건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로소 그것이 실현 가능할 때, 다시 일어서는 과정도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 청년 니트족은 현대 사회의 실체이지 않을까.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줄 수 있어야 비로소 사회가 안정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속도, 방향은 누구나 다르다. 때로는 멈추는 것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청춘을 응원한다.  
    오지우 기자 2025-05-26
  • 2
    안락한 교도소 생활
    ▲ 출처 : 픽사베이   교도소는 자유형의 집행을 위해 수형자를 교화하는 시설이다. 하지만 무료 의식주 제공과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장소로 노숙자나 빈곤 또는 외로움으로 살기 어려운 사회 부적응자들은 범죄를 통해 교도소를 가길 원한다. 2023년 8월 서울 강서구 지하철역에서 교도소에 들어가려는 목적으로 노숙인 시설에서 나와 갈 곳이 없어진 사람이 일면식 없는 시민을 폭행한 후 실형 1년을 선고받았다. 또한, 2023년 5월 공무집행방해죄로 벌금을 받은 사람은 벌금 대신 교도소로 가기 위해 검찰청 민원실에서 술을 먹고 흉기로 위협한 사례도 있다. 이는 노인층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법무부 교정통계 연보에 따르면 60세 이상 수형자가 2013년 2,350명에서 2023년에는 2.8배 수준인 6,504명으로 늘었다. 전체 수형자 중 60세 이상 비율도 같은 기간 7.3%에서 2.3배 수준인 17.1%로 높아졌다. 수형자 6명 중 1명은 60세 이상 노인이다. 학교, 경찰서, 소방서도 교도소와 같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이 된다. 특히 경찰관과 소방관의 경우 목숨을 바쳐 국민들의 안전을 지킨다. 하지만 2025년 3월 대형 산불이 일어나면서 소방관들이 먹는 식사를 보며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2024년에도 밥, 배추김치, 달걀프라이, 고추장으로만 이뤄진 소방관의 실제 식단 사진이 공개됐다. 이와 같이 소방서는 식단표와 영양사조차 부재한 곳도 있다. 소방관의 급식 단가 개선 여부는 요원하지만, 교도소 식단은 과거에 비해 점차 개선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국경일에는 특식이 제공된다. 서울 구치소의 식단표에 따르면, 2024년 추석 당일 아침으로 빵과 잼, 수프, 삶은 달걀, 두유가 배식이 됐다. 점심에는 감자수제비국과 진미채 볶음, 콘샐러드, 배추김치 등이 나왔고 저녁 식단은 된장찌개, 곤드레밥과 양념장, 배추김치가 나왔다. 교도소는 교화시설이다. 그럼에도 무료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어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장소가 된다. 반면에 자신의 목숨을 바치고 일해도 교도소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것은 부적절하다. 또한, 교도소의 시설이 좋은 것은 피해자보다 가해자인 수감자들의 인권을 더 존중하고 있고 국민들의 혈세를 범죄자의 편의를 위해 쓰는 것은 불합리하다. 프랑스의 경우 2000년대 초반까지 수감자가 노역을 통해 벌거나 외부에서 받은 돈에서 일정 금액을 공제하는 식으로 수감비를 청구했다. 이는 2003년에 폐지됐지만, 현재 재도입을 해 교정시설 운영 비용을 줄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와 비슷한 초고령 사회인 일본의 경우 2022년 기준으로 수형자 중 65세 이상의 비율이 22%이고 고령 수형자 처우가 주요 현안으로 대두된 상태이며 전통적인 형벌 체계인 징역형과 금고형을 '구금형'으로 일원화한 개정 형법을 2025년 6월 시행할 예정이다. 우리나라도 범죄자가 아닌 국민을 위해 국민이 낸 세금을 효율적으로 집행해야 한다. 다른 나라들과 같이 우리나라도 교도소의 변화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정희진 기자 2025-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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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은 했지만 ‘수업’은 없다… 국민을 향한 책임은 어디에
    ▲ 출처: 픽사베이   2025년 3월 31일, 교육부에서 정한 ‘의대생 복귀 시한’이 지났다. 이에 전국 40개 의대 중에서 38개의 대학교 학생들이 학교로 다시 돌아왔다. 서울대, 연세대, 성균관대 등 주요 의과 대학교에서 조금씩 돌아오며 분위기를 순환시켰다. 이에 교육부는 예정대로 대다수 복귀가 완료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복도는 고요하고, 강의실에서는 수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 학생들이 등록만 하고 ‘수업’을 들으러 오지 않은 것이다. 이른바 ‘등록 투쟁’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들의 저항이었다. 한 편, 의과대학 남학생들이 현역 입대로 1년간 1,882명이 복무를 시작했다. 도피성 군 휴학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엄청난 인력난이 예상되는 행동이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의지로 복귀한 것이 아니라, ‘요구로 인해 복귀 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부에서 제시한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며 시작된 사태는 교육정책에 반발을 넘어 의료체계 전반에 대한 신뢰의 위기로 번지고 있다. 실제로 필자는 의사에 대한 시선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과연 ‘등록은 하고 수업은 거부하는’ 방식이 옳은 방법일까?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육을 거부하며 등록금은 납부하고, 학교는 출석률을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 이는 정부와 대학만의 문제를 넘어 국민의 ‘건강권’과 직결된다. 그들은 현재 의사가 하면 안되는 태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당장 진료현장에서 빠져나간 전공의와 수련의 자리를 누가 채울 수 있을까. 한국의 인구 대비 의사 인원은 OECD 평균에 한참을 못 미친다.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 당 의사 수는 약 2.1명, OECD 평균은 3.7명이다. 지방은 특히 더 심각하다. 응급실과 산부인과 같은 필수 진료과는 의사가 없어 문을 닫는 상황이 생겼다. 그런데도 의과대학생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정원 확대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의 질을 떨어뜨린다는게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생기는 ‘공백’의 책임은 결국 국민에게 돌아온다. 의료현장의 피로는 이미 임계점을 넘은지 오래다. 의사가 되겠다는 이들이 스스로 교육를 거부하는 것은 모순적인 대처이다. 국민을 살려야 할 그들이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고, 국민은 그들에게 등을 돌리는 현실. 이는 단순한 정원 확대 논쟁이 아닌 신뢰와 윤리의 문제이다. 필자는 묻고 싶다. “당신들이 되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의사인가, 아님 기득권자인가. 의사라는 직업이 ‘전문직’이기 전에 ‘공공직’이라는 사실을 잊은 그들. 현재 병원 대기실에 누워있는 환자들에게는 ‘복귀 여부’보다 ‘진료가능 여부’가 더 시급하다. 정부에선 이 사태를 단순히 ‘복귀율’로 평가해선 안된다. 의료인력 확충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충분한 소통과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수의 학생들이 복귀했으나 강의실의 빈자리는 아직 채워지지 않는다. 국민과 학생, 정부 모두에게 진정한 ‘복귀’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진정한 복귀는 강의를 듣는 순간부터 시작이다. 그리고 의사는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그들의 행동은 모순적이다.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수업을 거부하는 것은, 결국 교육과 ‘의사’라는 직업 자체의 공공성을 외면하는 일이다. 등록은 하고, 수업은 듣지 않으며 국민 앞에서는 침묵하는 태도는 결코 설득력을 얻을 수 없고, 얻지 못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환자의 현재를 외면하는 행위는 직업 윤리와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다. 의사는 국민과 사회로부터의 신뢰로 부여되는 이름이다. 복귀하지 않은 학생은 물론, 수업을 듣지 않는 그들에게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기 전 마지막 관문으로 그들의 윤리와 양심을 확인할 수 있는 시험을 설치하면 어떨까. 국민을 위하는, 나아가 사회에 이바지하는 의료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진실한 목소리로 외치는 날이, 그들의 양심을 선언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오지우 기자 2025-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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