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은 했지만 ‘수업’은 없다… 국민을 향한 책임은 어디에
2025년 3월 31일. 교육부가 정한 ‘의대생 복귀 시한’이 지나자, 전국 40개 의대 중 38곳에서 학생들이 학교로 복귀했다. 서울대, 연세대, 성균관대 등 주요 대학들이 하나둘 돌아오며 분위기를 이끌었고, 교육부는 예정대로 대다수 복귀가 완료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복도는 조용했고, 강의실은 텅 비어 있었다. 학생들은 ‘등록’은 했지만 ‘수업’은 듣지 않고 있었다. 이른바 ‘등록 투쟁’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또 다른 형태의 저항이었다. 한 편, 현역 입대로 1년간 1,882명이 복무를 시작했다. 또 다른 도피 방법으로 군 휴학을 선택한 것이다. 이에 엄청난 인력난이 우려된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복귀한 것이 아니라, ‘요구로 인해 복귀 당한 것’이라 주장한다. 정부가 제시한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며 시작된 이번 사태는, 단지 교육 정책에 대한 반발을 넘어 의료 체계 전반에 대한 신뢰의 위기로 번지고 있다. 의대생들의 입장이 이해 안 되는 건 아니다. 예비 의료인으로서 자신들의 전문성과 향후 진로에 대한 불확실성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등록은 하고 수업은 거부하는’ 방식이 과연 옳은 방법일까?
교육을 거부하며 등록금은 납부하고, 학교는 출석률을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 이는 정부와 대학만의 문제를 넘어 국민의 ‘건강권’과 직결된 사안이다. 당장 진료 현장에서 빠져나간 전공의와 수련의 자리를 누가 채울 수 있겠는가. 한국의 인구 대비 의사 수는 OECD 평균에도 한참 못 미친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한국이 약 2.1명, OECD 평균은 3.7명이다. 특히 지방은 더 심각하다. 응급실과 산부인과 같은 필수 진료과는 의사가 없어 문을 닫는 상황도 속출한다.
그런데도 의대생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정원 확대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생기는 ‘공백’의 책임은 결국 국민에게 전가된다. 의료 현장의 피로는 이미 임계점을 넘은 지 오래다. 의사가 되겠다는 이들이 스스로 교육을 거부하는 모순적인 대처이다. 국민을 살릴 이들이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고, 국민은 그들에게 등을 돌리는 현실. 이쯤 되면 단순한 정원 확대 논쟁이 아닌 신뢰와 윤리의 문제다.
필자는 묻고 싶다. "당신들이 되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의사인가, 아니면 기득권자인가. 의사라는 직업이 ‘전문직’이기 이전에 ‘공공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재 병원 대기실에 누워 있는 환자들에게는, ‘복귀 여부’보다 ‘진료 가능 여부’가 더 시급하다. 정부 역시 이번 사태를 단순히 ‘복귀율’로 평가해선 안 된다. 의료 인력 확충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충분한 소통과 합의가 필요한 것이다.
다수의 의대생이 복귀했으나 강의실의 빈자리는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 국민과 학생, 정부 모두에게 진정한 ‘복귀’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진정한 의미의 복귀는, 강의를 듣는 순간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의사는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일부 의대생들의 행동은 모순적이다.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수업을 거부하는 것은, 결국 그들이 받는 교육과 그들이 될 ‘의사’라는 직업 자체의 공공성을 외면하는 일이다. 등록은 하고, 수업은 듣지 않으며, 국민 앞에서는 침묵하는 태도는 결코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환자의 현재를 외면하는 행위는 직업윤리와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다. 의사는 국민과 사회로부터의 신뢰로 부여되는 이름이다. 복귀하지 않은 의대생은 물론, 수업을 듣지 않는 그들에게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기 전 마지막 관문으로 그들의 윤리를 시험할 수 있는 시험을 설치하면 어떨까. 국민을 위하는, 나아가 사회에 이바지하는 의료계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진실한 목소리로 외치는 날이, 그들의 양심을 선언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오지우 기자
2025-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