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픽사베이
거친 세상 속에서 상처를 받아 외톨이가 된 청년들. 사회는 ‘청년 니트족’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왜 사회로부터 질타를 받아야 되는 걸까. 오히려 보호해야 마땅한 쓰러진 청춘들에 대한 비난. 이들은 반복되는 좌절과 무기력 속에서 점점 사회와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대한민국의 전체 청년 중 약 5%(약 50만 명)가 니트족에 속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날이 늘어가는 수치는 우리 사회가 병들어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그들의 고통은 ‘취업’의 벽에서부터 시작됐다. 연이은 실패의 결과는 자기 탓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되는 불합격 소식이 그들의 어깨를 위축시켰다. 경력직 신입을 원하는 기업의 태도에 그들은 제도 밖에 떨어져 있는 외톨이가 된 셈이다. 청년을 위한 정책은 넘쳐나지만, 대부분은 ‘준비된 자’를 대상으로 한다. 오랜 공백이 있는 그들은 기준조차 해당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5~34세 청년의 ‘쉬었음’ 비중(구직 포기, 비경제활동)은 2024년 말 기준 약 16% 이상으로 급상승한 분석도 존재한다. 자발적으로 쉬는 경우는 28%, 비자발적(취업실패 등)은 72%에 달해, 대다수가 구조적 원인 때문이라고도 밝혔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사회 인식의 전환이다. 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못 하고 있다’라고 바꿔야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왜 멈춰선 채로 웅크리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청년 니트족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경쟁과 탈락이 일상이 된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누군가는 결국 탈락자로 남게 된다. 주저 앉은 그들을 우리의 제도와 시선이 만들어낸 그늘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을 사회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 병든 사회를 다시 고쳐야 한다. 낙인을 거두고, 공백을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사회만이 청년을 다시 안으로 불러들일 수 있다. 필자는 사회에서 누구에게나 한 번쯤 멈출 권리를 허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쉬어가는 시간이 무조건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로소 그것이 실현 가능할 때, 다시 일어서는 과정도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
청년 니트족은 현대 사회의 실체이지 않을까.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줄 수 있어야 비로소 사회가 안정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속도, 방향은 누구나 다르다. 때로는 멈추는 것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청춘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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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우기자(juuuu0307@naver.com)
